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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전시/Gallery hoM _ hoM Lab 2021. 2. 8. 14:20

    참여작가 : 송채림, 인터미디어Y, 최선, 한영권, 황동하

    주최, 주관 : 씨앤피(CNP)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영상제작 : 이미지 세탁소

    디자인 : 비워크(viwork)

     

    2021년 2월 9일부터 2021년 2월 14일까지

     

     

    사이버 공간의 달빛 / mobile-connector

     

    어느 날 문득 바라본 각양각색의 풍경들, 이들은 무색투명한 태양빛에 의해 각각의 사물들 고유의 자태를 드러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색투명하여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며 그 형태조차 그저 둥글 뿐인 태양. 이처럼 천차만별한 만물 각자의 형상과 색상을 드러내게 하는 태양의 놀라운 마법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목격 가능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물론, 태양빛은 우리가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 모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햇빛은 엄밀하게 광학적으로 빛의 삼원색이 혼합되어 희색(무색)으로 보일 뿐이지만, 다채로운 빛이 겹쳐진 태양빛은 무색투명하여 공허한 부재의 색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색깔을 소유하였으되 역설적이게도 만물들 모두에게 돌려주어 허허로운 무색 태양.

     

    만물들 각자의 형상과 빛을 찾아주기 위해 태양은 강열한 생명력으로 빛을 펼치고, 그런 강한 생명성으로 인해 햇빛을 직접 육안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태양 대신 바라보게 되는 것이 달 아닐까?

     

     

    달은 지구의 위성으로 29.53일을 주기로 지구를 공전하며, 태양빛이 그 강열한 생명의 빛을 비추기 전인 새벽녘이나 야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달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은 태양 빛이 지구를 지난 후 받게 된 빛으로 달 일부의 형태만 드러낸다.

     

    태양빛이 지구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다가 서서히 손톱처럼 일부만 비춰진 상형의 초승달. 그리고 점차적으로 햇빛이 지구에 의해 가려지는 면적이 줄어들며 빛이 가득한 보름달이 펼쳐진다. 이후, 다시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며 초승달의 데칼코마니 같은 그믐달로 기울어가며 사라진다.

     

    이처럼 우리가 바라보는 달이란 태양 빛을 반사시키는 흐릿한 거울을 닮았다. 달빛은 태양으로 받은 빛을 반사하는 것이니, 우리가 밤하늘에서 관찰하는 달은 태양을 광원으로 한 태양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달은 한자 문화권 동북아 역사 속에서 은은한 자태를 오랜 시간 비추었다. 태양빛은 너무 강하기에 직접 마주하기 두렵고 어려운 반면, 달빛은 은은하기 때문에 직접 바라볼 수 있다. 오래 바라봤기에 친숙하여 동북아 문인들의 기록을 통해 오랜 기간 노래 불러지고 찬미된 '달'

     

    특히 11세기 북송의 문인 '동파 소식'은 정치적 입장에서 비롯된 귀양살이로 인해 가족과의 이별 중, 추석날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수조가두;水調歌頭'란 시를 지었다. 이 시의 대표적인 구절은 "다만 바라는 것은 오랫동안 건강해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달빛을 함께하자(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단원인장구, 천리공선연)"이다. 이는 먼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기에 직접 안부를 접할 수 없으나 달을 바라보며 서로의 안녕함을 기원하는 당시의 애틋한 정황과 정서를 드러낸다.

     

    또한, '전적벽부'의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取之無禁 用之不竭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뤌,,, 취지무금 용지불갈)'이라는 구절은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은 가져도 막는 이가 없고, 사용해도 다함이 없다'라고 축약 번역할 수 있는데, 소동파는 이 구절 속에서 '모두가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바람과 달빛'을 통해 자연을 예찬했다.

     

    '수조가두'의 구절이 전근대 시기 상대방의 안부를 걱정하는 애틋한 정황을 간접적 방식으로 드러낸다면, '적벽부'의 구절은 자연을 문인의 예술품처럼 찬미하는 태도를 보여주는데 공통적으로 '달'이 등장한다.

     

    지금도 '명절(名節)'이라 불리는 일종의 축제일들은 달의 운동 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역법(曆法)인 음력. 이를 기준으로 '보름달'이 뜨는 날을 축제일로 삼은 것이다.

     

    정착생활을 하던 농경시대. 낮에는 일을 하고 한가한 밤 시간대에 마련한 축제일. 칠흑의 어둠 속을 안전하게 오가며 놀기에는 달이 밝은 보름밤이 적절했기에 대표적 명절인 '설날, 단오, 추석'등 모든 명절은 지혜로운 선조들에 의해 달 밝은 보름날을 기준으로 정했다.

     

     

    무선통신과 교통시설이 발달한 동시대. 달빛을 바라보며 서로의 평안과 안부를 바랄 필요 없이 원거리 통신으로 직접 통화를 통해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며, 근거리는 차량을 통해 빠른 이동 후 직접 대면 후 평안함의 직접적 확인이 가능하다.

     

    이렇듯, 전근대 시기 달빛을 서로 바라보며 안녕함과 안부를 묻고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작가의 감흥을 전달했다면, 통신기술이 발달한 동시대 미술품은 '청풍명월'같은 자연물을 빌리지 않고도 먼 거리의 다수가 동시적으로 공동 향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청풍명월'을 닮은 대표적 미술품은 백남준의 1986년작 '바이 바이 키플링(Bye Bye Kipling)' 아닐까?

     

    인도 태생의 영국 시인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은 '동서는 완전히 분리되어 만날 수 없다'는 태도를 '시'속에서 견지했다. 그러나 한국 태생으로 서구에서 활동한 '백남준'은 동양과 서양, 즉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서구인 미국' 3개국에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예술행사인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를 인공위성이라는 당시의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했다.

    이렇게 진행된 '바이 바이 키플링'은 동서 구분 없이 함께 진행되며, 그 정보들은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전파를 통해 동시간대에 함께 바라볼 수 있게 해서, 키플링이 가졌던 동서의 분리라는 편견에 대해 "bye bye"라며 이별을 통보했다.

     

    백남준은 인공위성이라는 매개체와 자신의 미디어 영상을 적용해, 전근대 시기의 '청풍명월'보다 더욱 확장된 '가져도 막는 이 없고, 사용해도 다함이 없는' 예술행위이자 예술이라는 사건을 세계 곳곳 방안의 브라운관 속에 선사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달은 지구의 위성이며, 인공위성은 인류의 기술로 만들어진 달이다. 그래서 백남준의 인공위성을 활용한 미디어 작업인 '바이 바이 키플링'은 일종의 '인공-달(빛)'인 셈이다. 즉, 백남준은 세계 곳곳의 브라운관을 밤하늘 삼아 '바이 바이 키플링-인공 달빛'을 선사한 것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조선시대 세종 재위 시기, 부처의 공덕을 칭송하며 저술한 최초의 한글 활자본이라 한다. 제목의 '달(月)은 불성'을 은유하며, '천 개의 강(千江)이란, 번뇌로 가득한 속세'에 조응된다. 그래서 '월인천강지곡'은 의미상 '번뇌로 가득한 세상(千江)에 불성(佛性;月)이 비추기(印)를 염원하며 부른 노래'라고 해석 가능하다.

     

    백남준의 대표작들은 불교적 사유와 정서가 반영되었는데, 초기작 'TV 부처'(1974년?)는 모니터와 동영상 카메라, 그리고 불상 각각 1개로 구성되었다. 'TV 부처'를 '월인천강지곡' 형식의 함수에 대입하면 '카메라와 모니터는 강'이 되고 '불상은 달'이 된다. 그래서 이는 달 한 개가 단지 하나의 강에 비춘 셈이 된다. 즉, 'TV 부처'는 '월인천강지곡'식 문법에 적용하면 '월인-일강(一江)-지곡'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 후, 통신기술이 더욱 발달한 결과인 인공위성을 활용한 '바이 바이 키플링'. 이는 번뇌로 가득한 '강-tv 브라운관'에 비추는 '달(부처)-미술품'으로 일종의 '월인-억강(億江)-지곡'으로 업그레이드된 '월인천강지곡'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이 바이 키플링'은 'TV 부처'의 확장판이라 평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백남준의 대표작에 흐르는 일련의 불교식 문법을 적용하면, 'TV 부처'는 개인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소승불교'에 가깝다면, '바이 바이 키플링'은 깨달은 자(부처)가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해야 한다는 덕목을 중시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대승불교'에 비견된다.

     

     

    80년대 위성을 활용한 '바이 바이 키플링'류의 작업들은 제작비 측면에서 고비용이며, 그것이 방송되는 시간적 측면에서 한정된 시간의 일시적 이벤트였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동시대에는 비교적 저렴해진 영상 촬영 장비와 웹상의 저장기술과 모바일 통신의 발달로 언제 어느 곳에서든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 가능하며, 저렴한 통신비용으로 '청풍명월'같은 멀티미디어 영상'의 감상이 가능하다.

     

    특히, 코로나 감염병이 창궐한 전 지구적 재난 상황. 이는 누군가에게 감염되어 피해자가 되는 순간 동시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보균자가 되어 가해자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직접적 대면을 통한 교류와 소통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혹시, 97년에 개봉된 '접속'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이 영화는 인터넷 채팅이 보급된 초창기 사이버 공간을 통해 소통하는 남녀들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로 영문 제목은 'The contact'였다. contact는 실제 공간상의 접촉을 의미하며, 동시에 통신 매체를 통한 간접적 소통도 함축하기에 '접속'의 영문 제목이 'The contact'였던 것. 그러나 contact의 다층적 함의 중 실제 공간상의 접촉을 보다 중시한다면, 인터넷 통신을 함의하는 on-line을 접두사로 활용해 '비대면 접촉'을 'on-tact; on-line contact'라 불러봄직하다.

     

    그래서 코로나 감염병 시국, '비대면 접촉;on-tact'을 통해 시공간적 제약 없이 미술품의 감상이 가능하며, 통신매체를 통한 원거리 다 공간의 감상이 가능한 '미디어 아트'는 팬데믹한 감염병 시국의 대안적 매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예술품에게 온라인상의 가상공간(cyber-space)은 대안적 전시장이 된다.

     

    전시품들은 모바일 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등의 매개체를 통해 접속, 접촉(contact/connect)할 수 있으며, 그 순간 전파들로 산란되어 접히고 겹쳐있던 디지털 정보들은 우리의 눈앞에 정연하게 펼쳐진다.

     

     

    전근대 시기, 달빛이 광활한 대기를 통해 주로 보름밤에 우리들에게 감흥을 주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한 동시대. 우리들이 감흥 받기를 원한다면 '밤낮 제한 없이, 그믐 보름 구속 없이' 접속(contact/connect)을 통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전파를 통해 구성된 가상공간(cyber-space) 내부에 '달빛'을 소환하고, 펼쳐지는 '달빛'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들은 부단히 움직이며(mobile) 접속(connect)할 뿐 아니라, 접속(contact/connect)을 통해 불러내는 방식으로 '사이버-달빛'을 이동시켜(mobile) 미술품인 '사이버-달빛'을 접촉(contact/connect)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 펼쳐지는 빛인 '사이버-달빛'은 태양처럼 생명의 빛이자, 달빛처럼 특정인에게 소유되지 않고 모두 향유 가능한 문화적이며 예술적 빛이자, 어쩌면 깨달음의 가능성조차 잠재된 빛인지 모른다.

     

    - 황동하 (미술가 + 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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