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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人5色 - 갤러리 hoM 기획 초대전
    지난 전시/Gallery hoM _ hoM Lab 2021. 4. 3. 12:03

    오인오색전

    2021.04.13 - 2021.05.11 / 11:00 - 19:00

     

    참여작가 / 이태현, 홍용선, 차영규, 박철, 김성호

    치열한 예술행로 끝에 다다른

    동양정신으로의 귀의歸依

    - 55색 전에 부쳐 -

     

     

    홍 용 선(한국화가, 시인)

     

    ? 금번 hoM 갤러리 개관기념전에 초대된 5인의 화가는, 언 듯 보아서는 서로 간에 특별한 관계나 별 관련이 없는 작가들처럼 보인다.

    이태현李泰鉉(1940,예천생,59학번, 경기도 광주 거주), 홍용선洪勇善(1943,인천생,62학번, 양평 거주), 차영규車榮圭(1947,서울생,66학번, 강릉 거주), 박철朴哲(1950,문경생,69학번, 경기도 광주 거주), 김성호金聖浩(1954,대구생,73학번, 양평 거주)는 각기 태어나 살던 곳과 지금 사는 곳도 다르고, 다같이 홍익대 미술대 출신이긴 하여도 나이와 학번이 14여년의 간격이 있고, 그 전공도 각각 서양화와 동양화, 추상과 구상으로 갈린다. 흔히 작가끼리는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며 단체 활동을 통해 함께 전시회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은 그런 경우도 전무하다. 그러니까 이들이 함께 모여 전시회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가깝게 지낼 혈연이나 지연도 없고 학연도 그리 밀접한 사이가 아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십여 년 전부터 서로 가깝게 만나 특별한 우의를 맺으며 인생만년의 여유를 나누고 유와 락을 함께 하는 화단의 이색적인 존재들로 주변에 알려져 있다.

     

    ? 이들의 60~70년대 미대 학창시절은, 한국의 모든 사회가 너나없이 서구문화에 경도되어 문화, 미술계도 동양적 우리전통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젊은 열정만을 내세워 서구 현대미술의 현상적 상항 속으로만 빨려들 듯 달려 갈 때였다.

    이때 이태현은 우리나라의 첫 한글세대이자, 4.19 주체세대로서 재학 중에 '無'동인을 결성하고(’62), 이후 후배그룹인 오리진, 신전 동인들과 함께 '청년작가연립전'을 개최(’67)하여 한국화단 최초의 해프닝과 한국화단 최초의 행동하는 예술인의 모습을 보이며 가두행진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당시 한국현대미술이 그 윗세대의 뜨거운 추상미술의 세례를 받고 앙포르멜의 와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해프닝, 오브제, 설치 등, 새로운 경향의 네오다다적 작품을 선보여 한국현대미술의 혁신적 탈출구를 마련하고 큰 변혁을 기하였으니 이후, 우리화단에는 그룹의 결성과 각종 그룹전이 붐을 이루며 한국화단의 새로운 전기를 열어나갔다. 이태현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제1세대 아방가르드(전위미술가)의 선봉이었으며 한국미술계의 가장 대표적이고 실험적인 의식의 소유자이다.

    그는 이후로도 '무한대'그룹을 창립해(‘74) 활동하며 인도 트리엔나레(’78), 상파울로 비엔나레(’85), 국제전에 한국대표작가로 출품하고 각종 국내외 초대전, 공모전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또한 80년대에 들어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14여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자기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조심스럽고 은밀하면서도 꾸준한 자기모색을 치밀하게 계속하였으니 평면에 대한 구조적 해석과 엄격한 조형논리에 금욕적인 색채절제를 기하며 기하학적인 추상세계를 추구하는 등, 끊임없는 변화를 통한 자기세계를 철저히 모색해 갔다.

    그에 비해 이번에 함께 초대된 서양화가 박철은, ?한지韓紙작가?로 더 잘 불려진다. 그는 서양화가 중에서 추상작가이면서도 한지를 주로 쓰고 있는 작가들과 함께 한국미술계의 이색적인 단체인 '한지작가협회'를 결성(‘90)해 활동하면서, 78년 첫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47여회의 개인전을 통해 왕성하게 작업해왔다. 그러면서 쌍파울로 비엔나레(’83) 에 한국대표작가로 출품하고 쾰른, 마이애미, 홍콩, 동경 아트페어나 파리, 암스텔담, 밴쿠버 등의 국제전에도 적극 참여해 한국현대미술의 2세대 대표작가중의 한사람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또 흔히 '멍석작가'로도 불려지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제작 과정이 특별한데서 붙은 명칭이다. 그는 소위 한지Casting(주조) 기법을 이용해서 우리의 전래적인 기물인 멍석이나 떡판, 문짝 등과 서양의 악기인 바이올린, 첼로 등 서로 상반된 오브제에 석고나 씨멘트를 부어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천연 접착제를 칠한 한지를 2.30겹 두툼히 덧발라 서로 밀착될 때까지 쓸고 두드려서 펼친 후에 거기에 천연염료를 칠하고 때론 광목과 화선지를 이용해 먹 작업을 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그의 작품은 '한지에 의한 부조浮彫작품'이 되며 그랬을 때 그는 서양화가가 아니라 '한지 조각가'가 된다.

    한편 한국화 작가인 일사一沙 홍용선은, 당시 한국현대미술의 대세가 '국전'이었음에도 국전심사의 극심한 편파성과 심각한 불공정성에 대하여 크게 반발해서 한국화단에서 처음으로 '국전 동양화부 낙선작가전'(’67)을 주도, 개최하고 이후 국전에 불참하면서 한국화 최초의 추상화 그룹인 '시공회'(’72)와 '신묵회'(’84)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시공회(한국화)와 오리진회(서양화), 한국현대조각회(조각)가 참여한 '한국현대미술연립전'(‘73)을 기획, 참여하고 80년대에는 이후10여 년간 소위 <수묵화 운동>을 주도, 전개하여 한국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활력을 불어 넣었다.

    또 그는 지금까지 총 23회의 개인전을 가지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기행전(’90)을 비롯해 유럽(‘86), 인도,히말라야,(’01) 아프리카, 몽골, 러시아, 남미 등, 세계기행전(’07)을 개최하고 기행화문집도 간행하여 우리나라 작가 중 외국기행전을 가장 많이 개최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90년대 이후 이러한 기행전을 통해서 단조롭고 전통적인 국내적인 소재에만 한정되어 있는 한국화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글로벌한 소재의 확대와 이를 통한 현대적인 표현의 진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함께 기해 왔다.

    이에 비해 한국화가 신암信岩 차영규는, 일찍이 '춘추회' 초기(‘78) 때부터 참여하여 이후 현재까지 45여년간을 그룹에 몸 담아오면서 채색한국화 분야를 선두에 서서 이끌어온 개척자이자, 1공로자이다. 채색화는 같은 한국화 분야에서도 8.15 해방 후에 일본화 의 잔재인 왜색倭色그림이란 오해와 편견 속에서 당시 국전에서 가장 푸대접 받고 혐오시 까지 됐던 분야였다. 오죽하면 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춘추회 창립(‘75)시 주역이었던 고 조복순(당시 홍대 교수)선생이 창립멤버의 규합에 무진 애를 먹었던 비사秘史를 간직하고 있는 그룹이었는데 지금은, 회원 수가 150여명에 이르고 연륜도 한국화단에서 가장 오래된 그룹중의 하나가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회원들이 어느 특정학교나 특정지역 출신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전국의 각 지역 학교 출신들과 다양한 연령층들로 이루어져 어느 그룹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와 단연코 우리나라 화단의 대표적이고도 이색적인 그룹이 되어있다. 이를 통하여 차영규는 채색한국화의 위상과 진로와 화격을 함께 높여가면서 한편으로는 20여회의 개인전과 국내외 초대전, 단체전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꾸어 가고 있다.

    이번 55색전에 초대된 작가들 중 막내격인 한국화가 김성호는, 좀 특이한 개성을 지닌 작가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작가들은 거의 모두 젊었을 때 특정 그룹에 가입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그룹을 만들어 활동해 왔는데 비해, 그는 지금까지 어느 특정한 그룹이나 작가단체에 소속되어 진적이 없다.

    그는 일찍부터 고향 대구를 떠나와 시골 양평에서도 한적한 산골에 자리를 잡고 터를 닦아 직접 나무판을 자르고 엮어서 스스로 목수가 되어 목조 오두막 화실을 짓고 작업을 하면서 주로 지금까지 개최해온 20여회의 개인전을 중심으로 하여 작가활동을 해왔다. 그는 마치 깊은 숲속 호수 가에 직접 오두막 집을 짓고 살며 속세를 떠나 자연 속의 중용中庸의 삶을 추구했던 미국의 소로우(Henry D Thoreau)나 '월든네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작품은 화선지 보다 장지에 배접한 비단을 주로 쓰고 붓도 까치 꼬리털로 직접 만든 붓을 쓰는가 하면, 채색도 분채나 봉채, 쥬브 물감 같은 현대 동양화 안료가 아니라 그가 주변의 식물이나 광물질에서 추출해낸 천연염료나 석채를 주로 쓴다. 또 보통의 한국화가들이 수묵산수화를 즐겨 그리는데 비해 그는 먹 한 방울 쓰지 않는 순전한 채색화로 산 보다는 전원 들판을 주로 그리는 <채색들판화가>.

    그가 그리는 들판은 그의 생활주변에 계절에 따라 피어난 산수유, 오동꽃, 유채꽃, 개망초, 갈대, 억새꽃이나 이름 모를 야생화들로 가득 덮여있는 전원들판이나 한쪽 켠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비각이나 사당 등이 보이는 눈 덮인 겨울 들판, 또는 자갈밭 들판 위로 흘러가는 좁다란 실개천의 양안풍경 같은 들판들이다. 주로 세로 쪽 보다 가로로 길게 확장된 화면에 그려지는 이러한 그의 수평적 들판들은, 하나 같이 별반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시골 교외에서 눈길을 주면 어디서나 만나지는 하찮고 흔한 일상적인 풍경들이다. 그것은 종래의 동양화가들이 주로 그려왔던 높고 깊고 고귀한 풍경이 아니라 낮고 얕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소한 풍경들이니 이야말로 전통 동양화에서 이야기 하는 전형적인 잔산잉수殘山剩水식 산수화의 현대적인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 필자는 이 글 서두에서 이번 전시에 초대된 5인의 화가는 언 듯 보아서는 서로 간에 특별한 관계나 연관성이 없는 작가들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들에게 커다란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보통작가들처럼 평면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상식적인 화가가 아니라, 강한 노동력과 치열한 장인정신을 갖고 긴 시간과 땀이 수반되는 힘든 작업과정을 걷는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이태현의 경우, 그는 화면을 전체적으로는 모노톤으로 유지하면서 마블링 기법에 의한 옵티컬한 물결로 바탕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기하학적 단위의 기호 표현을 가미해 화면의 구조적인 바탕으로서의 안과 밖을 구현해가며 화면에 깊이의 차원을 더해준다.

    무수한 틈새의 반복을 통해 화면 전체를 옵티컬한 요소로 가득 채우는 작업은 복수의 전문적 기법이 동원되어야 하고 신체적으로도 중노동에 속하거니와 화면의 물기가 마르는 기다림의 시간도 인내해야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홍용선은, 2천년대 들어 화선지를 벗어나 건축재인 스티로폼을 선택해서 거기에 수묵과 한국화 채색을 써서 그리고 그것을 각종 송곳과 조각 칼로 파내는 각작업을 통해 화면에 입체적 요철凹凸을 가하고 도자기의 전통적인 상감기법을 원용해 부조浮彫회화를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스티로폼 화면을 자르고, 깍고, 파내는 작업은 섬세, 예민하고 치밀함과 함께 긴 시간이 수반되어야 하는 까다롭고 힘든 과정이다. 그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의 어느 시 구절처럼 '한겨울 창밖에는 삽시간에 내린 눈으로 천지가 은세계를 이루었는데, 창 안에서는 하루를 꼬박 작업했어도 겨우 백여 송이의 매화꽃밖에 못 팠다네'라고 한다.

    박철의 경우는 앞서 말했거니와, 그의 멍석과 한지와 천연염료와의 만남은 완성된 부조판을 떼어낸 후 한지가 물, 온도와 습도에 적응해 건조 되는 시간의 기다림도 필요해 그는 '한지가 마를 때까지 자연自然, 우연偶然, 고연古然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그의 전 작업과정도 엄청난 신체적 고통을 수반해야하는 힘든 작업임은 물론이다.

    차영규도 2천 년대에 들어 작업경향에 일신을 기한 한지작가다.

    원래 종이는 목재에서 추출하거나 재생지에서 뽑은 셀룰로오드 섬유로 만들어진다. 섬유질이 물과 혼합되면 제지원료인 펄프로 변형되고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생지는 목재펄프에서 처음 만들어진다. 이때 차영규는 그 목재펄프에 과산화수소와 염소를 사용해 표백하거나 천연염색을 한다. 이 과정은 가히 전문 제지공장의 수공업 단계의 중노동에 속하는 것이다. 그는 직접 뜬 한지를 수 십 겹으로 붙여 펼치거나 뚫어서 화면 자체에 요철과 원, 사각형과 육각형 등, 다각형의 형태적 변화를 주고 거기에 종이펄프를 덩어리째 붙여서 말리거나 두드려 펴서 조형적 화면을 구축한 후 그 위에 전통안료, 천연염료로 그림을 그린다.

    현대의 유화물감이나 한국화 물감을 버리고 전통염료나 천연염료를 주로 쓰는 것으로는 박철이나 차영규나 김성호가 모두 같다. 다만 김성호는 한지화면 보다는 그가 직접 제작한 비단배접 화면에 주로 쓴다. 그러나 천연염료를 직접 채집, 추출해 사용하기까지에는 남다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같다.

    이토록 이들의 작품제작 과정은 한결같이 강한 노동력과 치열한 작가정신, 긴 시간이 수반되는 힘든 과정이어서 실제로 이들은 작업 중에 '허리를 다치고' '발목이 붓고' '손가락이 아리고' '어깨가 결리는' 신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작품은 곧 땀의 초상, 산고産苦의 고통의 결과물이자, <몸과 정신의 총화總和> 라고 할 것이다.

     

    ? 이들의 이러한 치열한 작업과정을 보면, 자연스레 그 옛날 장자莊子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는 양생주養生主편 포정해우庖丁解牛를 통해서, 백정이 소를 잡아 해체하는 일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해 파고들어 오랜 시간 연마한 기술이 능숙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도를 닦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고 도와 기를 도와 예술에 비해 연관 시키고 있다. 예술체험은 기의 자유로움에 있고 장자가 말하는 도 역시 자유로움에 있는 것이다. 이때 기가 자유로우려면 그것은 수없이 반복되는 신체적 고역을 무릅쓰고 오랫동안 연마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회화창작에 있어서도 화가의 마음과 손(신체)이 완벽한 기를 통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옛 화론에서 말하는 심즉화心卽畵의 세계인 것이다.

    옛 부터 동양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바탕을 이루는 뿌리를 기로 보고 기를 얻기 위한 수련의 방법으로 각각 정좌靜坐(유교)와 좌망坐忘(도교)을 이용한다. 유학儒學에서 다양한 의미로 이야기 되는 정좌란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으로 불가에서 스님들이 참선參禪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좌망은 태식胎息호흡법을 통해 호흡을 무한히 한정시켜 심신을 가라앉히는 방법인데 도교道敎에서는 정신과 육체의 바탕을 기로 보기 때문에 마음의 수행을 기의 수련으로 본다. 이것은 마음이 몸으로 돌아가고 몸이 본원本源인 마음의 고요한 상태, 즉 고요함()으로의 진입과 유지에 관계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가에서는 정을 도의 기본성격으로 보기에 이점에서는 유가와 도가가 일치함을 보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송대 이후에 들면 정좌의 방법이 기존의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다스리는데서 보다 역동적으로 온 몸의 치열한 움직임을 사용하는 다양한 형태의 정좌법으로 방향전환을 한다.

    노자老子, 도의 성격을 허하고 정한 것(虛靜)으로 보았기 때문에 만물이 도에서 나와 다시 근원(뿌리)으로 돌아가는 것도 정이라고 보았다. 즉 유(현상계)는 무(인식을 초월하는 도)에서 나온 것이어서 마음의 수련은 무위無爲만으로 이룰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도교의 무사상인 것이다. 그는 하늘의 법은 땅에 있고(天法地), 땅의 법은 사람에 있으며(地法人), 사람의 법은 도에 있고(人法道), 도법은 자연에 있다(道法自然)고 하였으니, 도를 이룬다는 것은 인위人爲를 떠나 자연에 몰두하는 깨달음으로서 자연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그것은 곧 연아일치然我一致를 통한 <인간의 자연화>를 뜻한다. 공자孔子 또한 도에 뜻을 두고(志於道), 덕에 근거하고(據於德), 인에 의지하여(依於仁), 예를 즐긴다(游於藝)고 했고, 맹자孟子_물질적인 기교는 인위적인 힘을 가해 배워서 터득할 수 있지만 천연(하늘)의 기교는 자연스런 정신의 연마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될 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유가나 도가는 다같이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 않은 자연을 강조하면서 자연은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대로의 자연이자, 소중한 생명이기에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을 도로 보았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만물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정신을 맑게 하여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됨으로써 허정虛靜(도가)에 들고 천성天性(유가)과 인정人定(불가)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가 궁극의 지점에 이르러 하나가 되는 것은 바로 연아일치然我一致와 물아일체物我一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이고 유가에서 말하는 인화人和이자, 도가의 천화天和이다.

    예술에 있어서 자연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서양에서도 큰 관심을 가져왔던 문제였다. 보링거(W.Worringer,1881~1965)는 동·서양미술의 차이를 예술상의 우열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예술의욕, 혹은 내적동인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추상과 감정이입을 얘기한다. 즉 자연에 대해 대립하고 저항해서 정복하려는 자는 추상충동을 느껴서 추상주의자가 되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포용하는 자는 서정적인 자연미에 스스로의 감정을 이입해 자연주의를 추구 한다. 그러나 같은 자연주의라 하더라도 동양의 자연은 인간 삶의 지침이자 도덕률로 섬겨지는, 늘 변화하는 자연과 하나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인데 반하여 서양의 자연은, 과학과 접목되어 과학의 법칙이나 물질 또는 물질의 본성을 가리키는 개념인 관찰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다. 동양의 자연이 철저한 '()를 배제한 인간의 자연화自然化'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서양은 어디까지나 '()를 내세운 자연의 인간화人間化'를 추구하는 것이다. 또 같은 물화物化라도, 보링거가 말하는 물화는 추상충동과 감정이입의 관계에서 오는 사물의 즐거움이 아니고 인간의 즐거움인데 비해, 장자의 물화는 주체와 객체의 감정이입을 통한 '사물의 즐거움 안에 있는' 인간의 즐거움인 것이다.

     

    ? 전기했듯이, 이번에 초대된 5인의 작가는 강한 노동력에 의한 힘든 기의 수련을 바탕으로 하여 정좌와 좌망을 통해 ()도를 익혀왔다고 할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지금까지 어언 50~60년을 치열하게 걸어온 도의 행로에서 그들이 현재 쌓아올린 도법자연(예술)의 실체란 과연 어떤 모습인가.

    2천 년대 중반이후에 들면서 이태현은, 불협화와 작의성作意性이 농후했던 화면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자연성의 공간으로 크게 변모하고 있다. 혼돈과 질서의 대비적 국면이 사라지고 토막진 검은 선들이 화면을 뒤덮거나, 또는 무지개 색 토막 선들이 화면에 등장해 어떤 절대성의 세계를 보이며 화면의 구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바로 동양의 역을 구성하는 기호인 64와 그 기본이 되는 8괘의 도형이다. 그는 이전의 부유하던 무질서의 우주공간을 절대적인 기호로서 질서화 시킴으로서 화면을 전통적인 동양인의 사유체계 속으로 끌어드린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입장에서 천리天理를 구하고자 하는 의미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주역周易에서 여자와 남자를 음양陰陽사상으로 하여 자연의 섭리를 설명하고 이를 2진법으로 하여 태극太極, 음양사상과 64, 8괘로 설명해 왔다. 특히 동양의 도가, 유가들은 그로서 우주자연의 삼라만상을 이해해 왔으니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인상통天人相通, 천인감응天人感應은 바로 주역에서 시작되어 이후 동양예술에서 오랫동안 나타난 사상이다. 이태현은, 오랫동안의 사유를 통해 마침내 이를 통해서 전통적인 동양인의 우주관과 자연관, 인생관으로 귀의한 것이다.

    박철의 작품은, 근래에 들어 예전보다 화면이 한층 단순화 되고 단색의 경향이 더욱 짙어지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화면의 표면감을 더욱 강조하면서 멍석에서 오는 씨줄과 날줄 위에 불규칙적인 직선이나 자국을 넣어 우연성을 살린다. 그는 형상을 근간으로 했던 예전 작업에서 평면과 물질성에 중점을 두는 작업으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그 물질성이란, 바로 한지에서 촉발되는 것으로 그의 경우 한지는 단순한 재료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박철에게 한지는 한국적, 서민적, 평면적인 성정을 품고 있는 매재 로서 한지와 멍석과 천연염료와의 만남은 한국적인 향수와 전통성을 크게 자극하는 것이다. 그가 온갖 기를 유감없이 쏟아 부어 몸과 마음의 일체화를 통해 허정虛靜의 상태에 드는 것은 곧, 물아일치物我一致의 경지에 드는 것으로 그것은 바로 동양적 도법자연의 자연성으로 귀의하는 것이다. 그는 (붓으로)그리지 않는 그림, 최대로 절제한 표현성, 무심한 물질(종이)로의 환원, ()의 철저한 배제를 기하는 화면을 통해 자연성을 획득해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귀의하고 있다.

    홍용선은 2천 년대 후반에 들어 화선지 화면을 스티로폼 화면으로 바꾸면서 한층 더 한국화의 전통성 속으로 귀의한다. 소재는 종래의 산수에서부터 화조 및 화훼. 영모와 인물로 확대되고 기법 또한 파내기, 요철과 상감에 의한 부조기법으로 확장된다. 그간에 두루 섭렵해 온 추상화와 수묵화, 채색화를 한데 아우르고 많은 세계기행전을 통해 넓힌 소재와 시각을 종합해서 전통 한국화의 현대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경지의 표현을 시도해 타 작품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전통한국화의 정신과 현대서양화의 기법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조화시킴 으로서 한국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본다. 그에게 스티로폼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화는 반드시 종이에 의해서만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비현실적인 관념의 세계를 탈피해 오늘의 자연정서와 생활정서를 함축하는 리얼리티를 추구함으로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연아일치의 세계를 지향한다.

    차영규도 2천 년대 후반에 들어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이전의 작업들이 한지의 물성과 그 수용에 주목한 것에 비해서 한지 고유의 물성은 수용하되 강렬한 색채표현을 통해 작가의 자유롭고 분방한 비정형의 조형의지를 적극 개진한다. 그의 비정형의 화면은 때로는 벽면이 되고 땅이나 바위, 돌의 표면이 되어 가장 원초적인 자연의 밑바탕을 이룬 위에 그는 구체적인 꽃의 형태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발상과 유희를 통해 산과 꽃에서 노닐면서 '조형놀이'를 벌린다.

    그는 무수한 야생화나 이름모를 꽃, 심지어는 조각보, 흉배, 꽃담 같은 역사적인 유물이나 상형문자, 도상 등을 마치 꽃처럼, 별처럼, 보석처럼, 무지개처럼, 아니 보석이나 밤하늘의 별들을 꽃처럼, 무지개처럼, 꿈처럼 화면에 가득 펼쳐놓는다. 그것은 그가 무한한 상상력과 조형의지를 동원해 환상적이고 이상적인 그의 도화경적 낙원을 마음속의 자연경自然景으로 종합하고 조화, 승화시켜놓은 것이다. 그랬을 때 그것은 우리미술의 특질로 회자되는 자연미, 천연성, 무기교적 분방함 등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고 차영규가 이룩해놓은 한국의 자연성이자, 동양의 도법자연의 세계인 것이다.

    김성호는 이에 비해 항상 자신이 거주하는 주변의 땅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변모를 마치 기록으로라도 남기려는 듯이 자상하게 그려온 작가인데, 그도 2천 년대 중반 이후에 들면 자신이 체험한 자연의 느낌을 살리는데 더욱 무게를 두어 석채를 두텁고 거칠게 써서 서정적인 표현과 감성의 운율을 한껏 단순화, 명료화, 극대화 해간다.

    그러나 그의 소박하고 담백한 정취와 일상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평범하고 담담한 시선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하며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전원의 '은둔의 미'를 추구한다. 그는 교수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조용하고 단조롭고 소탈한 스스로의 생활규칙을 지키며 그룹이나 화단 활동, 사회 활동이나 세상사에는 일체 관여커나 연연치 않고 자기 예술에만 몰두해와 마치 현대판 은일隱逸이나 은둔군자隱遁君子라고 할만하다.

    동양에는 예부터 전통적인 은일사상이 있거니와 도가에서는 속세에서 완전히 탈피해 세상과 절연絶緣하는 것을 추구했지만, 유가에서는 재속在俗하면서 잠시 쉬어가는 쉼, 휴식을 뜻하는 은둔자의 모습으로서 자연에 칩거하다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귀의 본능을 지닌 은둔을 말한다. 결국 은일이란, 세상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무리를 떠나 홀로 자유로이 독립해 자신을 수양하고 도를 탐구하여 산수자연(도법자연)에 귀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래 도가사상에서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사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이란, 이들에게 은둔의 장소이자, 도를 달성하는 연아일치,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곳이다.

    한국사회에서 80년대 특히, 88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 이후 90~2천 년대는, 한국사회가 서구일변도에의 문화 추종에서 벗어나 확신을 갖고 의지를 다듬어 우리 문화의 전통을 확립해가려는 깊은 자각, 자성의 시기였다고 할 것이다. 이때 문화미술계에도 동양적 우리전통의 뿌리와 가치를 제대로 알고 이를 현대적으로 구현해 가려는 의지가 팽배해 갔다. 그런 중에서도 서양화를 중심으로 한 쪽은 '우리의 현대회화 속에 동양의 정신성을 어떻게 담아 낼까' 라는 명제가 중요 이슈였다면, 한국화 분야에서는 '우리 전통의 현대화를 어떻게 구현할까'가 더욱 중요한 이슈였다. 그것은 이번에 초대된 5인의 작가에게서도 그대로 보여 지거니와 그들의 기나긴 예술의 행로와 특히 2천 년대 이후에 이루어낸 이들의 성취는 많은 것을 우리 화단에 시사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이 성취해낸 것은 결과적으로 동양정신으로의 귀의 이자, 우리 전통의 현대화로 공통을 이루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또한 서로 다른 중에도 서로 같은 이들5인의 가장 큰 공통점이기도 하다.

     

    ? 예부터 동양에서 화가란, 직업이나 직위가 아니라 삶이다.

    화가畵家는 유가儒家, 도가道家, 불가佛家와 같이 한 개인이 아니라 일문一門을 의미한다. 그 일문의 요체는 곧 심법心法이고 따라서 화가의 법도 마음(心氣)에 있다. 유가에서는 이를 이룬 사람을 성인聖人, 군자君子라 했고 도가에서는 이를 신선神仙, 도사道士, 지인至人이라 했으며 불가에서는 보살, 화상和尙이나 선사禪師라고 하였다. 화가는 원래 대상()과 화가()의 만남을 통해 감흥과 흥취 곧, 진취眞趣와 지취志趣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랬을 때, 그것은 천기조화天機造化의 새로운 세상인 것 이므로 그것을 창조하는 사람 곧, 화가는 화성畵聖, 화선畵仙, 화백畵伯이 되는 것이다.

    일찍이 갈홍葛洪포박자抱朴子에서 동양에서 신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성격이나 인품이 부드럽고(), 순하고(), 어질고(), 믿음직()해야 한다고 했고, 유가에서도 겸손()과 너그러움(), 믿음성과 은혜로움(), 부드러움과 기민함()을 성인과 군자의 덕목으로 하였다. 장자는 또 제물론齊物論에서 지인에게는 사심私心이 없고, 신선에게는 공적功績이 없으며, 성인에게는 명예가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훌륭한 화가가 갖춰야 할 덕목과도 같은 것이니 화가의 성품은 작품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태현은, 학구적이고 분석적, 현실적이며 사색을 즐기고 성품이 맑고 깨끗한, 인문학적 교양과 학식이 깊은 사대부士大夫적 기질의 소유자이다. 그는 매사에 성실하고 기록에 충실해서 한국현대미술의 기록자이자, 증인으로도 통한다.

    박철은, 소탈하고 서민적이며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한편으로는 우직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경상도 사나이다. 그는 순하면서도 끈질기고 기민하면서도 왕성한 추진력을 갖춰 해마다 쉬지 않고 남다른 개인전을 개최해온 열정의 작가다.

    홍용선은, 순수하고 학구적이며 스스로 겸손하고 꾸준하고 순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평소에 글쓰기도 즐겨하여 저서를 남기고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차영규는, 늘 밝고 부드럽고 겸손하며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한국화단의 마당발로도 통한다. 그는 강릉대학장과 강릉 시립미술관장을 역임하면서 국내의 여러 대학에도 출강하는 중에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서도 서울대 미대에 출강을 해서 전무후무한 이색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는 존재이다. 그는 은퇴 후 강릉시 교외 한적한 장적골 마을회관에서 동네 노인들 학교를 열어 시와 그림을 가르치는 시골 노인학교 선생님으로 스스로 봉사하고 있으며 정식으로 등단해서 활동하고 있는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김성호는, 순수하고 순하고 겸손하며 성실한 성품이다. 그는 교수 생활을 은퇴하고 양평에서 은거하며 더욱 철저한 은일이 되었다.

    이들 5인의 화가들의 여생과 화가로서의 만년에 부디 락과 유, 와 유가 있기를 바라거니와, 다만 락이 지나치면 방탕하고 예가 지나치면 멀어진다고 했다.

     

    2021, 2,

    ( 양평 觀水樓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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