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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 드러내다 _ 이문현지난 전시/hoM Lab 2026. 1. 14. 09:42



나는 분청사기 박지기법을 통해 드러냄의 행위를 반복해 왔다. 흙 위에 백토를 분장하고, 그 위에 문양을 새긴 뒤 배경을 걷어내는 박지의 과정은 무언가를 더하는 장식이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것을 덜어내며 드러내는 선택에 가깝다. 박지기법은 표면을 깎아내는 기술이지만, 그 결과는 결핍이 아니라 선명함이다. 배경을 들어낼수록 문양은 또렷해지고, 감춰져 있던 선과 형상은 빛을 받는다. 이 대비와 낙차의 순간에서 나는 분청사기가 지닌 가장 본질적인 미감을 발견한다. 이 작업 방식은 단순히 전통 기법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가며 사람과 상황, 감정과 관계를 바라볼 때 겉으로 드러난 인상이나 장식적인 표정 너머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자주 묻게 된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말, 포장된 태도, 반복된 이미지들은
때로는 본질을 선명하게 하기보다 흐리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흙을 긁어낸다. 장식을 제거하듯 배경을 걷어내고, 남겨야 할 선만을 남긴다. 이 과정은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사람과 대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무엇이 진짜인가’를 묻는 나만의 방법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조선 전기 분청사기 박지기법을 기반으로 하되, 모란, 새, 범 등 다양한 상징과 비정형적 소재를 통해 박지기법이 지닌 조형 언어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한 결과물이다. 이들은 전통 문양의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호출된 이미지들이다.
작품에 남아 있는 선의 흔들림, 균질하지 않은 박지면의 질감은 의도적으로 통제된 결과라기보다 흙과 도구, 손의 움직임이 축적되며 생긴 흔적이다. 나는 이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유물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조형 감각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지기법은 나에게 하나의 장식 기법이 아니라 사유의 구조이며, 보는 방식을 전환하는 시각적 언어이다. 덜어낼수록 드러나고, 숨길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낼 때 비로소 남는 것이 있다.
이 전시는 흙을 빚고, 표면을 덮고, 다시 걷어내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보이는 것’과 ‘남는 것’ 사이를 질문하는 자리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묻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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